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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108년 한옥의 변신, ‘창성동실험실’을 찾아서

n-view 2024. 7. 11. 13:21

# 매력적인 ‘옛’ 공간

옛 공간, 정확히 말하면 옛공간을 활용한 문화소비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건물주가 과거부터 현재를 잇는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카페, 전시장 등으로 활용하면서 주도한 차별화된 소비문화가 그곳을 이용하는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가 더해진 ‘뉴트로’감성과 맞닿으면서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둘째, 단순히 부동산·건축적으로 접근하는 전면적 도시재개발이 아니라, ‘문화’요소를 접목시킨 문화적도시재생이 공공·민간차원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적도시재생은 낙후되고 쇠락한 도시 이미지 개선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도시로 나아가 도시경쟁력과 차별성을 갖게 한다. 셋째, 2019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너도 나도 집돌이 집순이가 되어 가상세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나마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고, SNS에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서촌’이 주목받아 왔었다.

# ‘호젓한’ 서촌이 뜨고 있다!

‘청와대’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서촌지역이 부동산계의 핫플로 떠올랐다. 서촌에서 50년 가까이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이 모 부동산중개인은 현재 서촌매물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이제껏 서촌은 서울 최고 통치기관과 가깝다는 이유로 개발에 많은 제약을 받아온 과거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고위 관료’와 ‘사대부’ 주거지가 밀집된 ‘북촌’과 달리, 조선건국 이래 ‘왕족’과 ‘권력층의 세거지’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실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정선’과 ‘중인계급’의 풍류문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의 본거지로, 권력층의 거처·별장, ‘중인계급’의 거처가 혼재되어 있었다. 근대로 넘어와서는 시인 윤동주와 화가 박노수, 이상범, 천경자 등이 이곳에 거주하며 문화예술 창작활동을 해왔었다. 1930년대 당시 대규모 한옥지구 개발이 한창이었지만, 서촌은 다른 한옥마을에 비해 드문드문 ‘한옥’이 지어졌고, ‘벽돌집.’ ‘적산가옥(敵産家屋)’이 많이 지어져 ‘서민마을’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최근에 와서 서울시는 지난 2022년 11월 청와대 개방 6개월을 맞아 ‘서울의 미래, 서촌의 미래’를 주제로 ‘2022 서울의 미래포럼’이 개최, 서울의 미래를 그리기 위한 ‘그랜드 디자인’의 첫 출발점이 왜 서촌이어야 하는가, 서촌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우병현 아시아경제 대표는 ‘2022 서울의 미래포럼’에서 “도시의 매력은 규모나 명성이 아니라 어떤 고유성과 스토리를 품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으며,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촌에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예산을 통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유식 서울시 한옥정책과장은 “서촌이 도시재생 활성화지역으로 지정돼 곧 활성화 계획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12년-14년 전(2008년-2010년) 즈음 지금처럼 서촌일대가 급부상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삼청동·사간동 일대의 전시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인근 통의동·창성동 등 서촌 일대로 전시공간이 옮겨가는 변화가 있었으며,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됐었다. 이렇듯, ‘서촌’은 현대에 들어와서 서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자원’으로 주목받아 이슈가 되고 있다.

# 이기진교수의 ‘창성동실험실’, 모두의 ‘문화실험실’

창성동실험실은 2NE 1의 ‘씨엘’멤버 ‘아버지’로 알려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이기진교수가 서촌 창성동의 어느 골목 오래된 주택을 문화공간으로 용도변경한 공간이다. 지난 3월 18일 토요일, 창성동실험실에서 이기진교수를 직접 만나, ‘창성동실험실’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 그곳에서 전개됐던 문화예술프로그램 이야기, 그의 창작활동 이야기, ‘창성동실험실’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창성동실험실’을 방문하니, 서촌에서 꽤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미술계에서 꽤나 굵직한 갤러리대표이자, 갤러리스트로 활동하시는 여사님이 “지나가다 들렀다”며 안으로 들어오셨다. 인간 이기진이 좋고, 그의 작품이 좋아서 매니저를 자처했다고 하면서, 도란도란 ‘동네주민’으로서, ‘예술가와 갤러리스트’로서 대화하는 모습이 다정하다. 전시장 사진을 찍고 있던 필자를 의식했는지 가벼운 인사를 하고 전시장을 나가셨다. 잠깐 마주했던 갤러리스트 덕분에 ‘창성동실험실’ 지기 이기진교수의 인간미 가득한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 이 곳을 매입할 당시 이 곳은 어떤 공간이었나. 처음부터 문화공간 용도로 생각했었나.

– 처음엔 막연하게 ‘한옥’에서 살고 싶었다. 학교 끝나고 주말에 막걸리도 마시고, 일요일 주말 아침에 근처 옛날 목욕탕도 가고 싶었다. 이런 소박한 로망이 있던 차, 이 동네는 북촌과 비교했을 때, 빈틈이 보이고, 수평적으로 하늘풍경도 볼 수 있는 서민적인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7년도에 현재 ‘창성동실험실’인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44’ 주택을 이 곳에 살던 할머니한테서 매입하게 됐다. 한옥이라는게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진다. 처음에 살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샜었고, 전기가 누전이 되고, 계속 고쳐야 될 상황이 있었다. 별장처럼 주말에 오거나, 방학 때 와서 좀 살다가 한옥을 즐길만큼 즐겼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갤러리’ 해보자란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 ‘창성동실험실’ 누리집을 보니,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가.

– 여기는 내가 별장작업실로 주말마다 찾아와서 재밌게 보낸다. 그렇다고 이 공간을 오롯이 내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이 집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작가들이랑 같이 쓰는거다. 여기서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들은 준비기간에 작가 마음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아예 열쇠를 작가에게 주고 “당신이 알아서 해라”하고 전시오프닝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친구를 초대하고, 여기 부엌에서 음식을 해먹기도 하나보다. 청소만 잘 해놓으라 한다. 전시기간 동안 이 공간은 내집이 되는거다. ‘화이트 큐브’ 형 갤러리는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지만, 내 입장에선 좀 답답해보인다.

▶ ‘창성동실험실’ 누리집을 보니까, 문화활동 기록 큐레이션이 굉장히 산뜻하고 에쁘다. 직접 작업한 건가.

– 직접 했다. 그 작업 중요하다. 여기서 전시했던 작가들의 기록을 위해서도, 여기 공간 사용기록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 ‘유퀴즈’에서 보니, 그림도 직접 그리고, 책도 쓰시는 예술적 재능도 있으시더라. 예술가로서의 철학이 궁금하다.

– 당시 ‘유퀴즈’ 섭외가 들어왔을 때, 유명한 프로그램인지도 잘 몰랐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교수님 그거 100% 나가서야 해요.”라고도 말했고, 학교 측에서도 직접 출연하라고까지 말했다. 어쨌든 내가 직접 쓴 동화책이며, 그림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당시에 좋아서 그렸던 거고, 좋아서 했던거” 거기서 끝내야지,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진 않는다. 그 문제는 내 작품을 읽고, 보는 사람이 즐기면서 결정할 문제다. 갤러리도 마찬가지다.

▶ 현재 ‘창성동실험실’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나

– ‘물리학자와 파리벼룩시장’ 전시다. 내가 직접 그린 작품들로 구성했다. 작가들 전시와 팝업이 있다. 그 공백을 비워둘 수 없어서, 내 그림들로 전시를 기획해봤다. 파리에서 직접 보고 느꼈던 좋았던 감정들을 풍경에 담았다.

 

 

 

▶ 전시했던 작가 중 ‘서촌’과 관계된 작가가 있나.

– ‘김미경’작가와 원로 ‘이강소’화백가 있다. 김미경작가의 경우, 옥상화가로 불리면서 여기 ‘창성동실험실’에서 4회째 전시를 하고 있다. ‘창성동실험실’ 초기에 작가님 본인이 직접 전시하고싶다고 해서 찾아온 이후 지금까지 인연맺고 있다. 2년에 한번씩 전시를 하고 있는 셈인데, 작가 본인이랑도 여기 ‘창성동실험실’과도 맞다고 생각하니까 찾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김미경’작가같은 분이 현재의 서촌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서촌을 지키고 있는거다. ‘이강소’화백의 경우, 예전 대학교때 여기 서촌에 화실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전시를 열어드리니, ‘창성동실험실’에 ‘기부’해주시면서 “이런 갤러리가 많이 생겨야 한다”면서 격려를 해주셔서 많은 힘이 됐다. 덕분에 여기 페인트칠도 새로 하고, 바닥공사도 다시 했다.

 

김미경 작품, 서촌옥상도1, 2014년, 펜, 42×29.4cm

▶ ‘창성동실험실’의 건축역사를 알고 싶었는데, 어디에도 공개된 바 없는건지, 공개됐으나, 내가 못찾는건지 모르겠다. 혹시 관련자료가 있다면 공개가능한가

– 처음 등기부등본 자료부터 지금까지 다 있다. 공개 못할게 뭐 있나. 그 자료들을 보면, 처음 ‘두 채’였던 집이 점차 ‘변형’을 해가면서 ‘한 채’로 된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자료 끝부분에 누가 팔았는지, 샀는지의 기록이 펜글씨 기록이 쭉 남아있다.

 

집 등기부등본. “대정5년 1916년(5월9일) 대지29평, 대정6년(1917년) 10월 23일 매입”

▶ ‘창성동실험실’은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 여기는 내가 제일 편하다고 느끼는 장소다. 그 이상 없다. 젊은 친구들이 자주 오는데, 여기 와서 뭔가를 많이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 ‘창성동실험실’이 동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와 미래세대에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 예전 20대 때 갔던 생맥주집, 학창시절에 갔던 김밥잡이라든지, 떡볶이집이이 그땐 그냥 갔었지만,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듯이, ‘공간’이 그렇다. 물리적인 형태만 남는게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무형의 것이 남는다.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이 ‘창성동실험실’이 의미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 서촌 재개발이 이슈다. 서촌은 어땠으면 좋겠나.

– 서촌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 높은 건물들이 올라가고, 개발하면 할수록 욕망이 드리울수록 서촌과 멀어진다. 자본만 생각하고 한옥을 산다든지, 건물을 지으면 서촌의 가치는 하락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지하에 주차장을 짓고, 쓰레기를 청소하는게 훨씬 가치있다.

 

# ‘창성동실험실’의 재발견

박물관·미술관의 수장고 속 ‘유물’ 및 ‘미술작품’도 어딘가 방치해두기보단 이를 다루고, 연구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이 동시대적 관점으로 정리하고 해석하는데서 가치가 빛나듯, ‘옛’공간도 그렇다. 공간을 보존한다는 명목하에 그냥 두기보단 물리학자 이기진교수의 ‘창성동실험실’처럼 ‘공중’에의 ‘개방’ 등 방법으로 ‘이야기’ 콘텐츠를 양산할 수 있는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한다면, 그 가치가 더 빛날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44’ 건축물은 현재 이기진교수에 의해 ‘주거공간’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하면서 건축물과 소유주간 1대1 소통에서 건축물·소유주·관람객 간 1대多 소통의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새 역사가 시작되었고, ‘공간형 콘텐츠’로서, ‘시대를 초월하는 소통의 매개체’로서 동시대를 사는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다.

한편, ‘2022 서울의 미래포럼’에서 ‘서울의 미래, 서촌의 미래’에서 유나경 PMA엔지니어링 도시환경연구소 소장은 “서촌을 국가의 미래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세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한다”면서 “비엔나의 경우 도시지도 서비스에 도시정보와 함께 필지별 건축시기, 건축가, 보존상태 등의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 건물과 그 장소의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 많아질수록 가능한 산재해 있는 자료를 통합하고 공유해 일반시민과 이해당사자가 사용면적에 맞게 장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이기진교수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44’는 1916년 당시 지어졌을 때부터 현재 소유주까지의 정보가 담긴 ‘등기부등본’은 100년이 넘은 기록물 자체로서도, 활용측면에서도 가치가 빛나고 있다. .

 

 

 

사진
이기진교수
김미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