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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백꽃 마을의 ‘미장센’ 마법사 문성해 감독

n-view 2024. 7. 18. 10:15

 

상대방을 배려하고, 여유로움이 넘치는 말투를 쓰는 문성해 감독의 아우라는 그가 사는 위미리의 감성과 너무 잘 어울렸다. 또, ‘어쩌다보니’ 미장센 작업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말 속에서 삶을 채근하지 않고, 흘러가는대로 두면서 작업을 지속하는 의연함을 볼 수 있었다.

 

감독이 사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는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제주도 남쪽 끝 햇볕이 잘 들어 유난히 따뜻한 시골마을이다. 몇 년 전부터 ‘제주감성’·‘제주시골살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 감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지난 2022년 연말 제주편을 기획하면서부터 그가 너무 궁금했다. 한때 미술하는 영화학도를 꿈꿨던 필자에게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렸을 적 꿈을 상기하게 해 설렜다. 그는 어떤 연유로 제주로 내려갔고, 어떤 생각으로 일을 해왔을까.

∥ 제주살이, 그들만의 ‘리틀 포레스트’

▶ 제주는 언제 내려왔고, 제주살이를 왜 결심하게 됐나

– 제주는 오래 전부터 내려와서 살려고 계획했었다. 내려온지 이제 4년차다. 영화현장 일이라는게 촬영하는 동안에는 잘 쉬지는 못하지만, 작품 한편 끝나고 나면, 한두달 정도 쉬는 기간이 있다. 지금 남편이지만, 남자친구였던 시절, 쉬는 한달동안 제주여행을 왔다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이런 동네에서 살면 좋겠다”라고 말했었다. 내가 어렸을때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여기저기 뛰어놀기도하고,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학창시절도 같이 보냈다. 도시에서는 잘 느껴볼 수 없는 정서와 기억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초등학교 2학년 마칠 무렵, 이 동네로 이사왔다.

▶ 제주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 아이 학교 교장선생님이 학생들 이름을 다 알정도로 아이들이 적다.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6학년때까지 같은 반이다. 사교육도 한번도 안시켰다. 마냥 운동장에서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고, 바다를 놀이터삼아 논다.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는 특별한일 없을때는 거의 매일 하교 후, 나 혹은 남편과 함께 동네바닷가행이다. 스노클링도 하고, 남편이 프리다이빙을 해서 그것도 같이 하고, 작년부터는 스쿠버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워놨다. 우리가족 모두 이 생활을 좋아한다.

 

 

▶ 육지가 아니라 불편한 점도 분명 있을 것 같다

– 편한건 솔직히 하나도 없다. 깡시골이라, 배달자체도 아예 안되고, 장 한번 보려고 마트가려면, 차타고 40분 정도 나가야 된다. 그마저도 태풍이 오거나 배가 결항이 되면, 마트가 텅텅 빈다. 그럴땐 집에 대충 끼니 떼울 만한걸로 떼운다. 배는 3-4일에 한번씩 들어온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다. 날이 좀 안좋아진다싶으면, 이제 미리 먹을걸 쟁여둔다.

▶ 그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마을이 너무 좋다. 며칠이고, 한달이고 살고싶은 맘이 드는데,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이 한 번 오면, 돌아가기 싫다고 할거같다. 어떤가

– 맞다. 실제로 지인들이 이 동네에서 오면 벗어나질 않는다. 계속 여기만 있는다. 지인 중에 촬영하는 친구가 있다. 쉴때마다 내려와서 숙소잡고 한달 살다 간다.

∥ 공간을 스타일링한다는 것, 사람을 이해하는 일

▶ 미술소품쪽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tv cf 아트디렉터로 일한다고 들었다. 하는 일 소개 좀 해달라

– 영화미술, CF,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했었는데, 다 똑같이 콘셉을 정해서 ‘공간’을 스타일링하는 일이다. 인물 또는 상황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상상과 시나리오 등 자료조사를 통해 공간을 꾸민다. 예를 들어, 예전에 선다방이란 맞선프로그램 공간 스타일링을 한적이 있다. 키워드는 ‘다방’과 ‘일반인들의 맞선’이었다. 그래서 편한 좌석에 앉아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기억이 있고, CF의 경우, 제품을 사용할 연령대를 고려해서 공간을 꾸민다.

 

 

▶ 이제껏 작품 속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 공간을 구현했을 텐데, 상상력, 창의력이 없으면 못할 것 같다. 대단하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해왔나

– 무대디자인을 전공해 방송국 인테리어팀에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니까 꽤 오랜 기간 일을 해왔다. 다양한 가상인물을 만나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공간을 창조해왔다. 처음 방송국에서는 프로그램이 바뀔때마다 그 무대 공간을 꾸며주는 일을 했었고, 그러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광고회사를 치리면서 그 회사에서 일했었다. 이후, 영화쪽에서 일을 하면서 오래 전부터 일을 같이 해오던 사수랑 ‘앨리스 데코’라는 회사를 차리면서 거기서 일을 해왔었다.

▶ 같이 회사를 차린 사수한테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어떤가

– 사수는 가족보다도 더 오랜시간 같이 보낸 인생의 스승님이나 다름없다. 사수는 일할 때 맺고 끊는게 정확하고, 추진함에 있어서는 물러섬이 없다. 주장한대로 끝까지 가보는 편이다. 또, 사수는 완벽주의자 성향인데, 여기서 내가 영향을 좀 받은게 느껴질때가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그 프로젝트에 대한 구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으면 시작을 안한다. 일하는 과정이라던지,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느정도 구체화되고나서 일을 시작하는 편이다.

▶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 작품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가장 최근에 신한금융투자 광고를 찍었는데, 일하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신한금융투자는 요즘 계속 활력을 북돋는 컨셉으로 찍고있다. 카테고리를 여러개 잡아 에피소드 형식으로 넣는 중 코로나학번인 2021 학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 촬영을 하려고 여기저기 섭외를 다니더 중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섭외했다. 대학교 재학시절 주임교수님이 아직 학교에 계서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니, 풋풋했던 옛 시절이 더 떠올랐다. 이 공간에서 20대 초반의 가상인물을 설정해서 공간을 만들려고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 그 교수님이 강의시간에 학생들한테 선배 문성해감독이 다녀갔다고 말하면서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느새 이만큼 성장해왔고, 이 자리에 와 있구나를 깨달았다.

 

 

▶ 일하면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품할 때마다 새로움을 찾아서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배우랑 비슷한거같다. 내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나의 주인공은 그 공간이다. 늘 새로운 공간과 인물이 되야한다. 다른 하나는 작품마다 거쳐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거다. 한 작품마다 구성해놓은 공간을 감독, 대행사, 광고주의 단계를 거쳐서 결재를 받아야 한다. 구석에 놓은 저 소파가 마음에 안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완벽하게 그 인물과 그 공간을 머릿속에 구상하는게 습관이 됐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은 글쓴 작가, 내가 생각해낸 가상인물, 광고주, 에이전시 등 일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 입장을 느껴야 가능한 일이니, 이 일 또한 사람문제가 가장 큰 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공간을 구상하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작업 스타일은 어떤지 궁금하다

– 일단 현장박치기스타일은 아니다. 하나의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다 구상해놓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서는 그리 오래 얼리지 않는다. 완전히 내 스스로 그 공간이 납득이 되야 일이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내 자신이 나를 많이 괴롭힌다.

 

 

▶ 그럴 때일수록 머릿속을 비우는게 중요할 것 같다. 쉴 때 뭐하나

– 단순노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뜨개질, 팔찌만들기 등 별거 다 한다. 확실히 도움이 많이 된다. 머리가 비워진다. 또, 몸 괴롭히는걸 좋아한다. 제주에 와서 2일에 한번씩은 꼭 필라테스를 하는데 가끔 산도 탄다.

∥ 잘해서 오랫동안 해온 일, 오랫동안 해와서 잘하는 일

문성해감독은 잘하는 걸 찾아, 묵묵히 하다보면,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도 나오고, 그럼 더 흥미를 갖고 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24살에 만난 사수도 제주에 산다고 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나가는 지혜와 묵묵히 한 길만 자기만의 색깔로 걸어가는 모습에서 프로라고 느껴졌다. 멋있었다.

 

나도 10년 더 일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봤다. 계묘년 새해도 밝았으니, 올해 목표도 세우고, 주어진 시간을 유용하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