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은 ‘미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보냈다.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서 편백나무 향이 나는 전통주 파는 곳에서 혼술을 하면서 상념에 젖었다. 관련 업계 지인들을 만난 후라 그런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근간이자, 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미술’임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이제껏 나는 단 한 번도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정리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정리해보려고 한다.
우선, 마크로스코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생각났다. 이 작품 보자마자 충격먹었던게 생각난다. 처음엔 이 작품의 강렬한 색감에 집중되다가 작가가 어떤 심경으로, 감정으로 작품을 그렸을지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 감정에 휘몰아쳐서 작가의 생애를 생각해보니, 어느새 내 인생을 위로받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예전 취업준비 시기에 너무 힘들었는데, 마크로스코 작품을 실물로 보니, 울컥하면서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다. 작품 한 점당 굉장히 오랜 시간을 두고 관람했던 것 같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선 자주 가는 사찰을 방문했을 때처럼 복잡했던 심경들이 정리된 기억이 있다. 그의 작품은 아무 생각없이 작품을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있다. 마크로스코 작품 앞에서는 나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위로를 받기도, 명상을 하기도, 구도(求道)를 하기도 한다. 마크로스코 채플이 지어진지 꽤 오래된거 같다.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올려놨다.
두 번째로는 에드워드 호퍼 작품이다. 호퍼 특유의 현대인의 복합적인 정서에 공감이 된다고 해야 하나. 침대에 앉아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은 특히, 나같아서 좋다. 이 작품을 오마주 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포스터가 생각난다. 이 영화 모든 장면에서 에드워드 호퍼를 느낄 수 있다. 마침 서울시립미술관에서 4월 20일(목)부터 2023년 8월 20일(목)까지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하니, 설렌다.
애호하는 두 서양작가 작품을 얘기하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이런 스토리를 갖고 있고, 이런 담론을 담고있는 작품이라고, 도상으로서, 미술사적 맥락에서 우리에게 먼저 말걸고 다가오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위로’와 ‘공감’을 받고 있었다. 한국작가 작품 중에는 박서보화백의 묘법시리즈가 생각난다. 예전에 박서보화백 영상에서 미술의 치유역할에 대해서 얘기했었던게 생각나, 다시 영상을 찾아봤다.
“좋은 예술가나 좋은 지도자는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때문에 온통 병동화될 거다. 그러면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 사람들을 치유해야겠다.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다. 자연의 색을 치유의 도구로서 끌어들이자. 라고 생각하고, 내가 처음에 공기색이라고 이름붙여준 그 작품을 하늘색하고 바다색을 교묘하게 배합해서 색을 칠해놓고 보니까, 내가 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더라고. 그림이 보는 사람의 불안, 고민을 흡입해주는 예술로 변해야 21세기 성공적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박서보, Ecriture No.060123, 2006, 캔버스에 한지, 혼합매체, 40×54cm, 기지재단 제공
박서보화백 작품도 너무 아름답다. 박서보화백 작품을 보고있으면, 편안하게 느껴졌었는데, 자연의 색을 배합해서 써서 그런거였다. 박서보화백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앵포르멜(단색화)을 최초로 시작한 작가이자, 거장이라 평가받고 있다. 예전에 루이비통 실물작품을, 마냥 의자에 30분 이상 앉아서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박서보화백과 같은 단색화 화가들 작품이랑 마크 로스코작가 작품이랑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의 색’ 하니까, 예전에 우연히 길가를 걷다가 알게 된 작품이 생각난다. 김보희작가다. 작년에 김보희작가 작품이 강남대로 미디어플랫폼을 장식했었는데, 피톤치드만 없지, 도로가 온통 숲 그 자체였다. ‘성장과 휴식이 공존하는 자연을 그리는 화가’ 김보희 작가의 초록초록한 풀과 나무들이 무성한 작품 한 점을 안방에 걸어두고 싶다.
숨 쉴 때마다 편백나무 향이 코끝 가득한 그 공간에서 김보희작가 작품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에게 미술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됐다. 한때는 모든 미술작품을 분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있었고, 동시대 미술이슈에 대해서 미술비평을 해야 있어보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미술을 관망의 자세로 대하고 있지만, 미술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앞으로의 내 삶을 지속해 나가는데 있어서 이런 표현 정말 진부하지만, 바로미터로 작용할 것 같다.
작품이미지
마크 로스코 : 작가 공식누리집
에드워드 호퍼 : 영화사 진진 제공
박서보 : 기지재단 제공
김보희 : 작가 공식누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