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뷰 "이 영화 몇 번 봤어?" 벌써 국내에서 437만명이 봤다. 요즘 흥행의 지표는 빠른 시일 내에 관람객이 몰리냐도 중요하지만, N차관람을 한 관람객이 얼마나 있냐, N차관람을 하고싶게 만드냐라고 한다. 필자는 지난주 ‘스즈메의 문단속’을 친구와 함께 1회차 관람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왠지 모르게 차오른 벅찬 감정과 함께 묘한 여운이 남아, 이번주에 혼자 한 번 더 볼까 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1973년생으로 ‘너의 이름은’ 애니메이션으로 ‘2016년 제42회 LA 비평가 협회상 애니메이션상’, ‘2017년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각본상’을 수상할 정도로 필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 애니메이션도 그가 직접 집필한 소설을 토대로 만들었는데, 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11번째 극장 개봉작이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은 세 번째 재난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일본역사에서 충격적인 자연재해로 기록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 실제장소를 실사에 가깝게 묘사한 가로 2.35 : 세로 1의 비율의 ‘시네마스코프’기법을 차용해 로드무비 형식으로 진행되는 ‘스즈메의 문단속’ 컨셉과도 잘 맞아 실감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은 청량감있는 총천연색 사용,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구성, 뛰어난 작화 속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박진감넘치는 스토리전개, 스토리 곳곳에 깔린 일본 튝유의 神문화,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들이 묻어나는 생동감있는 성우들의 연기력, 귓가에 맴도는 아름다운 선율의 ost가 특징이다. ‘스즈메의 문단속’도 그렇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식 재난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장소들을 치유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에서 지진은 숨쉬는 것과 같이 늘 겪어야 하는 자연재난이다. 신카이 마코토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치유해가는지, 어떤 장치들을 설계했는지 나름대로 해석해봤다. 또, 시각적 재미를 주는 캐릭터 및 아이템 레퍼런스인 지브리 스튜디오 오마주를 찾아보았다.
# ‘문’을 통해 상처받은 과거의 ‘우리’와 ‘장소’ 직면하기
애니메이션 포스터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쓰여있다. 문 건너에 여주인공 스즈메와 남주인공 소타가 서 있고, 문 바깥과 문 안쪽 풍경이 다른걸로 보아 ‘문’을 통해 어딘가로 다녀오겠다는 것이 표현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 장면, 스즈메가 재난의 전조 기운인 ‘미미즈’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문을 닫으러 갔다가 일상으로 복귀하는 장면에서 “다녀오겠다”는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우선, ‘스즈메의 문단속’의 ‘시작’장면은 어린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고, 한 여인이 이 어린아이를 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때 필자는 이 여인이 아이의 엄마인줄 알았지만, 고향을 찾아 오래된 문을 열고 들어간 스즈메를 그린 ‘끝’장면을 보고, 그 아이를 마주한 것은 엄마가 아니라, ‘현재’의 ‘스즈메’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있지만, 부정하면서 울고만 있는, 재난의 상처를 간직한 어린아이를 마주하고, 안아주는 이는 ‘현재’의 ‘스즈메’ 자신이었다. 현재의 내가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어버렸던 ‘고향(장소)’에서 과거와 연결된 ‘문’을 통해 유년시절의 ‘나’를 만나 ‘상처’와 직면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다. 여기서 ‘문’은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두번째로 스즈메가 재난의 전조 기운인 ‘미미즈’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문을 닫으러 간 ‘장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미즈가 출몰하는 ‘장소’는 지진으로 망가져 누구도 출입하지 않는 폐허다.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 곳에서 다시 ‘아픔’이 시작되려는 것을 막는 행위는 재난으로 망가지고 상처받은 과거의 우리네와 폐허가 된 장소를 직면해 위로하고 있다.
# 평범한 ‘일상’의 가치로 일본국민의 공공안녕 기원하기
스즈메가 ‘미미즈’를 찾아 문을 닫는 행위를 종교적 차원에서 해석해보려 한다. 스즈메가 ‘문’을 찾아 닫을때, 과거에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는 것과 ‘소타’에게 배운 기도문(아래)을 외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자체가 과거의 ‘상흔’을 잊기위함과 직관적으로 현재 재난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궁극적으로 일본 국민들의 ‘평온한 일상’이 유지하길 바라는 기원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かけまくもかしこき日不見ひみずの神かみよ。
아뢰옵기에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시여.
遠とおつ御祖みおやの産土うぶすなよ。
머나먼 선조의 고향 땅이여.
久ひさしく拝領はいりょうつかまつったこの山河やまかわ、
오랫동안 배령 받은 산과 하천을,
かしこみかしこみ、謹つつしんでお返かえし신もうす。
삼가 돌려드리옵나이다.
또, ‘스즈메’가 문을 닫으러 다닐 때, 조력자로 나온 사람들과 보낸 평범한 일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코쿠 동부에서 ‘유노타니 온천’을 운영하는 동갑내기 ‘아마베 차카’를 도와주면서 보냈던 일상, 버스정류장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스즈메’를 태워 본인이 술집을 운영하는 동안 자녀들과 놀아주던 일상, ‘의자’로 변신한 ‘소타’의 집 ‘도쿄’로 갔을때, 사범대에 재학 중인 ‘소타’의 친구 ‘세리자와’와 엄마를 잃고 ‘스즈메’를 딸처럼 키워온 ‘타카키 이모’를 만나 여정을 함께하면서 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던 시간들은 ‘미미즈’가 급습하면 사라질 소중한 일상들이다. 이 일상들은 신카이 마코토가 엄마를 잃은 상처 속에서 외로웠을 ‘스즈메’를 그들의 일상 속으로 초대해 따뜻함으로 대해주면서 일상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재난으로 한순간에 잃게 된 과거의 어느 누군가의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신카이 마코토가 의도한 메시지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 ‘지브리 스튜디오’를 오마주하는 신카이 마코토
신카이 마코토식 일본 애니메이션이 감히 일본인들의 삶 속에 스며든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궜던 일본 애니메이션 전성기를 잇는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신카이 마코토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오마주해서 그런가. 둘 영화는 참 많이 닮아있었다.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 일본 神문화를 녹인 것, 애니메이션 전반을 관통하는 공익의 메시지와 사랑의 가치, 콘텐츠의 사회문화적 영향력면에서 유사하다.
이번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안에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을 오마주한 요소 혹은 유사한 맥락으로 표현한 것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첫번째 아이템은 ‘미미즈’다.’씨네21’에서 신카이 마코토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재난의 전조증상을 표현한 “‘미미즈’는 어떤 크리처나 몬스터보다는 하나의 현상으로 그리려 했다. 그래서 문 밖으로 ‘미미즈’가 퍼져나갈 때, 어떨 땐 물처럼 보이지만 또 어떨 땐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도쿄 상공을 뒤덮은 소용돌이 모양의 ‘미미즈’는 나중에 작업을 모두 마치고 나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의 비주얼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모노노케 히메’와 ‘스즈메의 문단속’ 모두 자연현상이라는 공통된 모티브를 두어 유사점이 생긴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필자도 이 장면에서 모노노케히메에서 분노한 사슴신의 모습을 떠올렸듯이, 많은 관람객들이 오버랩됐으리라. 두번째 아이템은 주인공 곁을 맴도는 ‘고양이’의 존재다.
주인공 스즈메에 의해 뽑힌 요석이 흰고양이 ‘다이진’으로 변해서 미미즈를 막기위해 ‘문’을 찾아다니는 ‘스즈메’에게 ‘문’의 좌표를 알려주는 역할과 동시에 여정 중 ‘스즈메’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스즈메를 돕게 하는 ‘행운’을 주는 역할을 하면서 ‘스즈메’옆을 지킨다.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2007 작품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키키의 요절복통 마녀수련을 하는 내내 옆을 지켰던 ‘지지’고양이가 떠올랐다. 또, ‘다이진’의 여정 중 지하철에 앉아있는 장면에선 이를 본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이다!’라고 말한다. 필자도 “일본 애니메이션 중 어디서 봤던 장면인데”하던 차에 ‘귀를 기울이면이다’라는 대사가 들렸으니, 신카이 마코토가 이를 오마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씨네21에서 말한 신카이 마코토의 표현처럼 “지브리 스튜디오는 일본 사람들에게 일상이자 삶이다. 그 작품들을 통해 생애를 반추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문화적 DNA랄까, 진짜 일본 사회를 그리려먼 스튜디오 지브리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지브리 스튜디오는 일본 국민들 생활 속에 깊숙히 스며든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돌려주다, 다녀오다
문득 ‘스즈메’가 문을 닫을때 외는 ‘소타’의 ‘기도문 끝말’과 ‘다녀오겠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봤다.’돌려준다’는 의미는 상황 또는 사건을 종결시키는 말이지만, ‘다녀오겠다’는 말은 다시 돌아와 상황이나 일상을 이어간다는 여지와 암묵적인 약속이 담긴 말이다. ‘돌려주다’라는 말로 생활 속에서 늘상 주고받는 평범한 이 말들이 재난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다녀오다’라는 말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만나지 못한 깊은 아픔을 간직한 ‘스즈메’ 본인과 같은 생존자들의 과거의 ‘문’을 열고, 마음의 상흔을 치유하는 마법의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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