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뷰 "공간디자인에 단청의 미를 더하는 이종옹 작가
전통문화예술은 현대적 변용을 거쳐 대중들에게 향유되다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형식을 창출하면서 미래로 계승되기 마련이다. 이제껏 전통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었던 단청을 현대건축공간 내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과거의 풍족함과 호화스러움의 상징이기도 했던 단청을 이젠 우리의 일상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청의 아름다움이 공간디자인에 활용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선했다. 그래서 단청을 소재로 인테리어에 접목시킨 이종웅작가를 인터뷰하기로 기획했다. 사전조사를 통해 몇 개의 상업공간에 완성된 작업물을 접했다. 단조로롭고, 밋밋했던 공간에 화려한 색감의 단청이 디자인되면서 매력적인 공간이 연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종웅작가는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에 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인테리어작업도 하고, 간헐적 단청작업도 하면서 한글레터링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ᄋᅠᆻ다. 지난 12월 21일(목) 익선동 소재 모 카페에서 이종웅작가를 만나 신선한 작업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 보았다.
# 지금이 있기까지
▶디자인을 먼저 접한건가, 단청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건가
학부는 디자인전공이었다. 입시미술을 거쳐 직업에 대한 고찰없이 디자인과로 진학을 하게되다보니, 적응을 잘 못했었다. 졸업 전, 휴학을 했을 때, 우리나라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됐다. 매일 새로운 장소를 찾는 미션을 스스로 했었다. 그러다보니, 문화재의 매력에 빠져, 부여 전통문화교육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고, 교직원 경력도 쌓게됐다. 이때 사무직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바로 전통문화교육원에 지원했었다. 2년간 교육기간을 거치면서 자격증을 땄고, 교육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불교문화와 불교미술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동국대학교 대학원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단청과 인연이 시작됐다.
▶주로 작업은 의뢰가 들어오는건가, 직접 지원하는건가
비록 2-3일 정도만 작업했었지만,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공민왕 신당 단청이 내 인생의 첫 번째 단청 현장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전통문화교육원 친구가 연락이 와서 작업했었다. 그 이후 작업은 소셜미디어 덕을 많이 봤다. 틈나는대로 작업하는 것들을 기록저장용으로 계정을 만들었었다. 교육원에서부터 그렸던 그림들을 업로드하곤 했었다. 그러던 중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단청할 남자를 구한다는 구인공고를 보게 된데서 시작하기도 했었다.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지금의 스승님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스승님은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활동 중이시다. 예전 일섭스님(조선후기)의 계통을 잇는 분으로, 탱화, 개금, 목불 등 불교미술에 다재다능하셨던 화승이다. 이 분이 화승의 업적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이 본인의 작업관련 일지, 지금으로 말하면, 작가 아카이브정도 될 거다. 그걸 많이 남기셨다. 그 기록지를 보면, 생활상도 녹아있고, 제자랑 대화한 사담도 담겨있고, 누구랑 일했었는지, 어떤 식으로 작업해야겠다는 계획 등 다양한 소재거리가 담긴 기록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분으로부터 계승되는 일섭문도라고 부르는 화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계파로, 전통불교미술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훌륭한 선배님들 중 한 분이 우리 스승님이시다. 스승님한테 공부도 배웠고, 현장에서 많은 가르침도 받고, 꾸지람도 듣고, 인생선배로서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나 또한 애정으로 스승님을 대하고 있다.
# 인테리어가 단청을 만났을 때
▶인테리어에 단청요소를 결합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나
그 시작도 소셜미디어의 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도 인스타그램에 아카이빙을 했었다. 당시 건축사무소에 재직 중이던 한 지인이 나의 기록일지를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홍대쪽에 신규 개점하는 카페 사장님이 인테리어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고싶어하시는 분이고, 단청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제안이 들어왔었다. 이 작업제안에 굉장히 설렜었다. 당시 단청이 현재 사찰 중심으로 명맥이 유지가 되고 있는데, 외연을 확장한다는 차원에서 현 시대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게 하기위해 어떤 도전을 해야할까를 고민하고 있었고, 마침 좋은 제안이 와서 흔쾌히 수락했다. 이 작업을 시작으로 또 홍대쪽에 한국식 바비큐를 하시는 사장님이 힙한 한국인테리어를 원하니, 작업을 부탁한다는 연락으로 인테리어작업을 쭉 이어오게 됐다,
▶단청을 인테리어에 끌어들인 것 자체가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 변용을 이룬 법고창신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차원에서 요즘은 어떤 고민을 하고있나
일종의 책임감처럼 고민하는게 있다. 지금의 단청작업이 전통적인 단청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는 비판할 수도 있을 것같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단청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 단청의 의미도 되새기고, 원형도 보존하는 것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이다. 단청 일에만 국한하지 않고,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개인적인 사업들을 시작한게 개인적으로나, 업계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이면 좋겠다 생각을 해본다.
▶단청작업과 인테리어작업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재료가 다른가
재료는 일단 예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최근에 새로 복원한 (구)안압지, (현)동궁과 월지 작업할 때, 석채로 했었다고 하는데, 일할 때 자연안료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이에 대한 피드백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현재의 화학안료보다 예민한 성질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자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대한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기술같은 경우는 단청작업과 인테리어작업에 큰 차이가 없고, 디테일을 요하는 작업에는 아무래도 여기도 예산이 큰 요소로 적용하는 것 같다.
▶실제 전통기법의 기술자들이 많지 않다면, 단청장이들은 감소세라고 말하는게 맞나
새로 창건되는 사찰에 대한 수요는 좀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체감상으로는 단청장이들이 감소세인거 같다. 같이 단청작업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내 바로 윗선배가 49살이신데 그분께서 막내생활을 꽤 오랫동안 하셨던 걸로 알고 있다. 지금부터 서서히 은퇴하시는 분들이 많고하다보니, 이런 상황은 감소세로 받아들이기 충분한 조건인 듯 하다.
▶인테리어는 현대건축문화의 산물이고, 단청은 전통건축문화의 산물인데, 이를 결헙한다는 시도 자체가 법고창신아닌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시도무형문화재이기도 하신 단청 스승님한테 너무 감사하다. 계속 기회를 만들어주신다. 벽 하나라도 내어주시는데, 엎드려 절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도 단청작업을 전업으로 삼길 바라시는데, 현재는 대학원에 묶여있으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주시길 바라고 있다. 스님 시선에서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스승님은 나를 좋게보고, 잘 키워주시려고 하시는게 너무 감사해서, ‘내 나름의 가치를 좇고 있어요’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못하는 현실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현대 단청이라는 새 영역이 열려야 한다. 무조건 다 때려박는게 아니라, 인테리어의 전반적인 톤에 맞게 매칭하면서 단청의 원형도 유지하면 좋을 것 같다.
# 내 작업은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작업은 무엇인가
가장 최근에 한 것 중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 영광 불갑사 단청작업이다. 불갑사 대웅전은 보물로도 지정되었을만큼 문화재로서 가치가 훌륭한 건축물이다. 스승님이랑 문도선배들이 작업을 하고 있어서 잠깐 갔던 적이 있다. 대들보 단청작업을 본 적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니, 너무 매력적이었다. 조선후기 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고,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당시 이 작업을 했을때만해도 지금보다 더 어두웠을텐데, 어떻게 작업했을까를 생각하니, 경이롭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감동이었다.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한복브랜드와 콜라보를 하게 됐다. 업체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내년 시즌 겨냥해서 같이 작업해볼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거였고, 아마 2024년 1월 말이나 2월 중 나올 것 같다. 동정을 넣은 한복스타일의 항공점퍼라고 생각하면 될거다. 또, 지금 익선동 스튜디오에서 단청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매 순간이 영감을 위해 열려있는 것 같다. 어떤 편인가
어딘가에 출품은 하지 못하더라도, 혼자 끄적거리거나 마음 속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 평소에 아름답다고 여겼던 것들을 기억해뒀다가 실제 작품에 써먹는다. 지나가다가 예쁜 장면, 인상깊은 풍경 등을 기억했다가 써먹곤 한다.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들을 단청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반대로 단청을 캐릭터의 머리끈, 팔찌 등의 요소에 넣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 미래 상상하기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싶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공유해달라
이제까지는 주로 의뢰에 의해서 작업을 이어왔다. 요즘 눈여겨보는 카페가 한 곳 있다. 모노톤으로 인테리어를 하셨는데, 여기에 단청을 입히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먼저 제안하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곳이다. 예전에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아이패드로 단청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 재밌었다. 또, 현대인들의 희노애락의 감정들을 단청에 녹여서 그려보고싶기도 하고, 애니매이션 등의 콘텐츠 속에 등장하나 캐릭터들을 차용해서 섞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향후 계획과 목표 공유가능한가
대학원이 딱 1년 남았다. 졸업한 이후의 진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단청장이로서의 길과 단청디자이너로서 길을 개척해가는 일을 고민하다보니, 한가지 길을 고집해야하는지, 여러 일들을 병행해야하는지가 됐다. 석사학위를 어찌 활용할지,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준비 중인데, 이를 어찌 활용할지, 전통예술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지금 하고있는 도슨트 일도 재밌다. 요즘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 없으니, 늘 그 고민 끝에는 ‘요즘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 없더라‘ 하며 현재의 나의 삶을 위로하게 되는 것 같다.
▶포부가 있다면?
이제껏 인테리어의 전통문화적인 요소는 한국화, 민화, 자개, 병풍, 달항아리 정도가 많이 쓰였던 것 같다. 이제는 단청도 인테리어의 한 요소로 널리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작품들이는 것보다 단청을 활용하는 게 비용적인 면에서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단청도 어찌보면 일종의 사치품이다. 그래서 내 작업이 돈을 들인만큼의 효과가 드러나도록, 확실히 다른 공간과 차별화된 곳, 특별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또, 현장일을 하다 생긴 공백기에 단청활용작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면, 인력수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점점 동료들이 늘어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 단청의 새로운 지평
이종웅작가는 예술가로서 성공을 위해 필요한 노력과 지속성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모든 예술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공통된 말을 했다. “경제적인 성공이 따라줘야 예술가로서 마음의 여유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청년예술가이니만큼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나가고, 할 수 있는 영역의 것들을 넓혀나가는 것을 차선으로 말했다. “누군가 내 작업물을 보고, 개인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대중의 반응이 먹거리가 되는 시대다.”라면서 덧붙였다.
이종웅작가는 청년예술가로서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단청을 통해 표현하며, 이 경험이 작가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는지를 공유하고 싶어하는게 느껴졌다.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창의적이고 신선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종웅작가의 단청작업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단청활용작업을 통해 세대와 공감하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문화 전파에 일조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