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뷰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좀 빼줄 수 없어? 글로 보니까, 너무 다르다. 이 내용 완전히 빼줘.” 혹은 “가공이 전혀안됐네요. 내가 설사 이렇게 말했어도 조금 다듬었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이 상태로는 책에 못싣겠어요. 내 글 빼주세요” 이번 아카이브프로젝트 구술기록 아키비스트로 참여하면서 들었던 말이다. 구술기록은 인터뷰내용을 씨앗삼아 다른 자료 참고해서 가공한 기사형식의 인터뷰글이 아니라, 오롯이 인터뷰이의 구술과 녹취록 중심으로 엮어지는, 말그대로 날 것 그대로에 가까운 서사(敍事)다. 그래서 인터뷰이한테 정리된 기록이라고 보여주니, 저런 반응을 했던 거다.
은평구 소재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은평구의 ‘엄마들의 연대’에서 출발한 도서관이자, ‘마을공동체도서관’으로, 주민들과 상생하는 도서관의 모범사례로 꼽혀 국내·외에서 벤치마킹을 하는 특별한 도서관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의 공식적인 역사는 2015년 개관부터 시작하지만, 이 도서관의 탄생을 위한 수많은 엄마들의 노력과 희생은 훨씬 이전부터 있어왔고,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또, 마을공동체도서관답게 도서관의 직원들과 도서관이용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공동체일원으로서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번 글은 구산동도서관마을 기록에 관한 필자의 체험기다. 지난 8월부터 11월 11일까지 3개월 남짓은 구산동도서관마을에 관계된 보통사람들의 기억을 구술채록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은평구민을 만났다. 그리고 여기서 정리한 녹취록을 중심으로 기록집 및 전시콘텐츠용 스토리텔링 작업을 했다. 또, 구산동도서관마을 공공의 역사적 흐름 속에 개인의 기억을 빈틈에 채워넣는 타임라인작업을 통해 입체적이면서 사람냄새나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경험을 한 값진 시간이었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기록집도 발간하고, 전시도 개최했다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아카이빙은, 특히, 구술아카이빙은 우리가 몰랐던 사회의 이면을 사람중심의 서사로 조명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맺기를 확장하는 기제역할을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같이,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었던 은평아카이브프로젝트를 어떤 식으로든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필자의 여러 소회를 담은 일종의 체험기 형식으로 정했고, ‘우리들의 첫만남’, ‘기획과정:동네골목 탐방하기’, ‘인터뷰 취재글과 구술기록의 차이:아!이래서 달랐던거구나!‘, ’여기서 만난 우리들, 새로운 관계의 시작‘, ’기록자의 시선‘ 꼭지로 정리해보았다.
# 우리들의 첫만남
“그림기록도 있고, 음악기록도 있는데, 왜 구술기록 과정을 택하셨어요? 많이 해봤을건데, 그리고 지금도 너무 바쁜데 할 수 있겠어요?” 8월에 책달샘숲속도서관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진행한 아키비스트 선발인터뷰에서 허〇〇가 했던 질문이다. 기존에 엔드뷰를 통해 인터뷰글을 수없이 작성하고, 이 전에 쌓아왔던 경력때문에 한 말인 듯했다. 이론상으로 인터뷰글과 취재글은 뭐가 다른지 학습하기보다 구술기록도 직접 경험해보면서 둘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고싶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솔직히 양가감정이 들었다. ‘정말 너무 바쁜 9월, 10월일텐데,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지금이 아니면, 구술기록을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제오겠냐’ 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얏호! 선발됐다. 막상 선발되고 나니, 기쁜마음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선 3개월간의 일정공유, 멘토소개, 아이스브레이킹시간, 팀별회의가 있었다. 허〇〇를 멘토삼아 나〇〇, 최〇〇, 필자 이렇게 총 4인이 구술아키비스트팀이었고, 다른 팀에 비해 소수인원이었지만, 정예멤버라는 자신감에 어깨가 한껏 솟았던 기분이 들었었다. 4인의 직업을 서로 공유해보니, 모두가 ‘글밥 짓는 여자들’이었다. 갑자기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 기획과정:동네 탐방하기
9월 1일(토) 두 번째 만난 우리들은 결과물을 내기까지 빠듯한 일정이라, 서둘러 기획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미 멘토의 지시로,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설립자, 근무자, 이용자파트로 나눠서 나〇〇선생님이 섭외를 해놓은 상태였다. 기 섭외자들이 ‘구산동도서관마을’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라, ‘구산동도서관마을’을 중심으로, 다른 하나의 파트를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필자와 나〇〇선생님은 이를 모색하고자,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다음날 오전에 곧 사라지게 될 역촌중앙시장 근처에서 보기로 했다.
동네를 알아야 기록도 할 수 있는 법. 9월 2일(일) 오전 10시에 만난 우리는 오후 3시까지 열정적으로 구산동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이 동네 오랜 로컬인 나〇〇선생님은 모르는 곳이 없었다. 예전 MBC 인기드라마 ‘궁’ 촬영지 옛날 즉석떡볶이 ‘코스모스 분식’, 자연주의 채식식당 ‘밥·풀·꽃’, 90년대 스타일 문방구 ‘예일중앙문구’, 동네사람만 아는 술맛집 ‘벌교맛집’, 동네변화를 제일 잘 알 것 같은 ‘행복한 부동산’, 오랜 동네지기 ‘형제세탁’과 ‘송관헤어’, 구산동도서관마을이 들어서고 나서 처음 생긴 로스팅카페 ‘J&J’ 카페, 동네 초록식물화분을 모아서 판매하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은혜쌀마트’, 사회학 교수님이 운영하는 작은 독립서점 ‘니은서점’, 은평복합문화공간 ‘ep platz’ 등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곳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을 어떻게 구산동도서관마을과 엮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송관헤어와 J&J 로스팅카페에 붙어있는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업간판 ‘도서관마을의 친구들’을 봤다. 아! 이거다! 이 사업에 착안, 도서관 일대 상점, 주택 등 주민들의 생활기반 시설 중 오랜 역사가 있거나, 실제 이 사업에 참여했던 대상자들을 탐색하고 선정하기로 했다. 이들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도서관마을이 생기기 전후, 마을과 도서관의 내외연 변화에 대한 기억을 기록함으로써 민간아카이브의 의미를 갖을뿐더러, 도서관이 가져온 내외적 변화와 영향을 파악할 수 있고, 도서관이 주민과 호흡하는 마을공동체 도서관으로서의 정체성과도 결부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요렇게 기획방향을 잡아갔다.
# 인터뷰 취재글과 구술기록의 차이: 아! 이래서 달랐던거구나!!
“이 상태로는 책, 전시 어느 것에도 쓸 수가 없어요. 찬찬히 다시 살펴보세요. 구술기록은 잡지글이 아니에요. 다시 정리해주세요.” 녹취록을 정리해서 프로젝트 대장님에게 보여주니, 교졍교열 수준이 아니라, 싹 뜯어고쳐야 한다고 하셨다.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똑같이 인터뷰해서 정리한 글인데 뭐가 다르다는 거지.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첫 번째 인터뷰 정리글을 멘토에게 보여줬을 때 들었던 말이다.
이번 파트에서는 고군분투하면서 구술기록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인터뷰 취재글과 구술기록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짚어보기로 한다. 두 유형의 글은 인터뷰형식에서 출발하고, 서사전개를 위한 역사·문화·사회 속에서 글을 작성해나가는 방식은 동일하다. 또, 두 가지 모두에서 문답형쓰기, 일문일답형쓰기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과연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첫 번째, 일단 이 두가지는 전달목적부터 다르다. 인터뷰 취재글은 인터뷰이의 생각, 의견, 경험을 보도하거나 공유하는데 사용된다. 따라서 해당인물의 관점을 강조하고, 독자들에게 인터뷰이 혹은 특정주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인사이트 제공을 목표로 한다. 반면, 구술기록은 연구, 기록보관, 법적근거에 사용하기위한 원천수단으로서, 인터뷰 과정 자체를 문서화하며, 인터뷰이의 말, 대화내용에 집중하여 정확한 내용을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두 번째, 인터뷰이 발언을 활용에 따른 가공방식에 차이가 있다. 인터뷰취재글은 기본적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본론에 두고, 머리말에 참고자료를 활용한 내용을 두고, 끝부분에는 글 주제체 대한 나의 시사점, 식견 등의 살을 붙이는 형식을 취한다. 반면, 구술기록은 오롯이 인터뷰했던 내용으로만 가공하여 대화내용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따라서, 대화내용을 정확히 기록하는 녹취록 작성과정, 즉, 대화내용을 인터뷰이의 실제발언, 표정, 감정 등을 기록하는 선행과정이 너무 중요하다.
세 번째, 인터뷰이의 글을 현장에서 정리하는데 차이가 있다. 인터뷰취재글때문에 나간 현장에서는 대부분 노트북을 두들기면서 인터뷰이의 말을 기록했다면, 구술기록을 위한 현장에서는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고, 인터뷰이의 대화내용에 집중하면서 당시에 어떤 감정과 어떤 기억이 있었는지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리해나갔다. 처음에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노트북을 두들겨서 정리했었다. 결과적으로 그 인터뷰이의 녹취록은 기록집용으로는 못살리고, 한시적인 전시용으로만 살렸다. 이렇게 된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구술기록의 현장정리경험이 미숙했던 필자의경험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 여기서 만난 우리들, 새로운 관계의 시작
구술기록 프로젝트의 또 하나의 수확은 ‘사람’이었다. 프로젝트 시작단계에서 8인의 인터뷰를 기획하고, 기록집 생산과 전시 개최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다시 힘을 얻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팀원들 덕분이었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일들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이 프로젝트에 올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채찍질해주고, 보듬어준 팀원들이 있었기에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11월 26일(일) 전시철거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마무리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앞으로의 여러 일들을 함께 하고, 고민도 나누는 사이가 될 것이란 예감을 해본다.
그리고 필자의 인터뷰이였던 김행강선생님과는 동네친구가 됐다. 선생님은 필자와 대면하기 전, 카톡으로 도서관에 관해서 쓴 시를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당신의 삶 속에 스며든 도서관을 표현한 시였다. 도서관이 곧 선생님에겐 사람이었다. 마음이 포근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몇 주 뒤, 1차적으로 정리된 글을 전달하니, 고생했다고 쌀국수를 사주셨다. 교정본은 이틀 뒤, 당신 집으로 찾으러 오라고 하셨다. 동네친구 집에 초대받은게 얼마만인지. 이때부터 김행강선생님께 자주는 못해도, 사적으로 통화도 하게되면서 일상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지난주에는 신형휴대폰도 구경하고, 닭볶음탕에 막걸리도 한잔했다. 조만간 또 연락드려야지.
# 기록자의 시선
중간에 1차원고마감 기한을 놓쳤던 적이 있었다. 허〇〇대표한테 아주 혼쭐이 났었다. “빠질건지, 끝까지 해낼건지, 오늘 지켜볼게요. 1차 원고 내일은 꼭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끝내야 한다.’ 라는 일념으로 허벅지를 비틀면서 밤을 샜다.
“조금 더 그들에게 관심을 주고, 말에 귀기울여 줄 수없어요? 아키비스트는 일종의 책임감이 있어요.” 연구프로젝트 설문지 코딩작업에, 학교 과제랑 발표에, 그리고 엔드뷰 원고에…….여기 프로젝트에 신경못써서 수박 겉핥기식 정리를 했더니, 이런말을 듣는게 당연했다.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구술기록 어떻게 듣고 기록할 것인가>에 “우리가 묻고, 듣고, 기록하고자 하는 것의 토대는 그의 세계에 속한 것이므로, 그에 대한 존중없이는 제대로 된 인터뷰가 행해질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아키비스트는 구술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자세,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에 대한 존중을 보이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구술자는 마음내고, 시간내서 인생을 기록자에게 공유한 셈이다. 그러니, 기솔자는 구술자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세상에 내보일 책무가 있다. 기록자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허브로서 기록자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