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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과정‘사적인 지도’ 콘텐츠 기획자 인터뷰 황자양에게 이야기를 듣다.

n-view 2024. 6. 19. 15:59

 

‘사적인 지도’
누구나 시기에 따라 주로 머무르고 활동하는 장소와 공간 그리고 경로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기는데 지도라는 매체는 꽤 좋은 플랫폼이 되더군요.
지도 위에 내 이야기를 담는 것, 모두가 다 보기 쉽게 만든 것이 아닌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된 것, 바로 사적인 지도입니다.

 

 

1. 지도라는 매체

질문 – 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 사회과부도 교과서를 그렇게도 좋아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집에서 혼자 놀 때도 사회과부도 책을 끼고 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잘 열어보지도 않는 책인데, 제 것만 닳고 닳아 있었어요. 지도를 보고, 지도에 적힌 지명과 도, 시, 군, 구, 읍, 면, 동 경계들을 유심히 보면서 ‘이 곳은 이렇게 생겼구나.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전국에서 몇 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구나.’ 등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그 관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는데, 대학교 졸업하고 정식으로 들어간 첫 회사가 바로 지도 만드는 회사였답니다. 어렸을 때 가졌던 관심과 지도 회사에서의 일은 물론 성격이 아주 달랐지만 지도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비교적 오래 일할 수 있었습니다.

 

 

2. 내가 직접 만들어본 나만의 지도

질문 – 사적인 지도 작업을 해보겠다고 느낀 계기가 있었나요?

 

그렇게 제가 좋아하던 지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서 보람차게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돈을 받고 지도를 만들어주는 일은, 판매용보다는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일이 대부분이었죠. 저희는 주로 공공기관에서 의뢰한 관광안내도나 문화지도를 제작하는 회사였습니다.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의견에 따라 작업방향과 결과물이 정해졌고,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때론 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지금으로부터 7~8년 전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이야기로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살았던 망원동 지도부터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전주 동서학동 지도까지, 저의 발자취를 따라서 7~8가지 정도의 지도를 만들어봤습니다.

 

두 손을 절대 가볍게 하고 지나치기 힘든 망원역 2번 출구에서 망원시장 입구에 이르는 경로를 나타낸 지도, 오래된 가게들이 사라지고 음식점과 술집만이 남아있던 상수동 – 당인동 지도, 일하기 너무 좋은 곳이라고 느꼈던 광화문역 – 경희궁 일대 지도, 도시 답지 않은 너무 멋진 광경을 자랑하던 홍지문 – 옥천암 인근의 지도, 어렸을 때 제가 살았던 전주 동서학동 지도 등 저의 발자취와 이야기를 담아 나만의 사적인 지도들을 만들어 봤습니다.

 

지역 곳곳에서 사람들이 각각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고 그것을 한데 모아 동네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시점에 그곳에 살았던 누군가에겐 추억하고픈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어려운 현실을 살고 있는 지금의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담담한 일상의 모습이 담겼을 거라 생각하니 참 근사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이후 언젠가 접하게 된 개념인 ‘커뮤니티 매핑’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동네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장소 혹은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 말이죠.

 

 

3. 다양한 사적인 지도 작업 – 워크숍, 인터뷰, 리서치를 통해

질문 –  이후에 지도 워크숍이나 전시 등 다양한 작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인상적인 작업들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나만의 사적인 지도 만들기 작업을 한 뒤 프로그램화해서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에 치여서 계획이 자꾸 늦어졌는데,

한 공모사업에 지원해 선정, 마침내 그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2019년 여름 서울시 청년허브의 청년업이라는 사업을 통해 저는 ‘홍합망, 사적인 지도 만들기’ 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주로 거주했던 홍대-합정-망원 지역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사적인 지도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저 포함 다섯 명이서 함께 지도만들기 워크숍을 통해 홍합망 지역에 대해 서로가 자신의 즐거운 경험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며, 그 결과물로 각자의 지도를 만들어 전시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카카오프로젝트 100을 통해 진행한 ‘매일 동네 기록하기’ 미션활동 결과물을 지도가 포함된 책자로 제작하기도 했고, 마포 공유촉진 지원사업을 통해 ‘포은로 사적인 지도’ 사업을 리서치, 콘텐츠 제작, 전시의 과정을 거쳐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카카오프로젝트 100은 참여자 각자의 인증 활동을 통한 장소 기록, 그리고 포은로 사적인 지도는 과거 장소를 기억하는 분들과 현재 그 장소에 위치한 가게 운영자 분들을 인터뷰하여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그것을 지도가 포함된 콘텐츠로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과 겨울에는 금천문화재단에서 주최한 ‘N개의 금천’ 사업 총괄 기획자로서 ‘금천사람들의 사적인 지도’를 진행하였습니다. 금천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주민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금천구의 장소들을 발굴하고 그를 책자와 지도로 만들어 새로 전입한 주민에게 전달하는 뜻 깊은 프로젝트였습니다.

 

 

 

 

4. 개인을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사적인 지도

질문 – 사적인 지도 작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말 그대로 사적인 지도에는 그 지도 주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잘 담기는가가 중요해요. 일반 지도에 들어가 있는 모두에게 필요한 공적인 정보가 아니라 최대한 구체적이고 사적인 정보여야 합니다. 그것을 보는 동네 주민들이 공감도 할 수 있고,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 수도 있게 되죠. 같은 지역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작업에 참여해 많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지역에서 사용될 중요한 데이터 자원이 될 수 있겠죠.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기록할 수 있는 지도 플랫폼을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참여자 각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지역은 그 데이터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오래전 제가 나만의 지도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지금까지의 일들처럼, 어떤 시점에 그 일을 시작한다면 근사한 목표를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지도가 중심이 되는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이건 가까운 미래에정말로 실행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몇 주 동안 고민 중이예요.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