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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문화코드 : 한글 타이포그래피

n-view 2024. 7. 3. 14:32

– 우리에게 한글이란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은 중국 베이징에 통신사로 갔을 때, 중국어를 하지 못해 한자로 문사들과 한자를 이용해 소통했습니다. 이로부터 30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민족 고유의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던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에게 전용문자로 한글을 채택한 일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첫 번째, 인간은 ‘말’이 아닌 ‘문자’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며, 두 번째, 다른 나라 ‘문자’로 소통하던 시대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를 전파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문자는 단순 소통의 개념을 넘어, 문화적 행위를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문자의 발명은 기록의 시대를 가능하게 했으며, 인쇄술이 발달함에 따라,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특히, 한자문화권에 있던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반포이후, 독자적인 문자보유국이 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치열하게 일본과 맞서 싸우며 우리 문화를 수호해오던 독립운동가와 국민들의 피·땀·눈물 섞인 정신적 가치가 서려있는 것이 바로 ‘한글’입니다.

 

 

– 우리 곁, 한글 글꼴 개발자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반포 후, 300년이 지난 조선후기에 이르러 왕실과 양반계층의 문화로만 인식되던 한글문화가 서민들의 높아진 지위와 맞물려 서민들도 시조·가사·문학 등 창작물을 향유·생산하는 문화로 변화되었으며, 이와 함께 출판산업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1) 신규섭, 「한선학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장 “박물관은 유물과 관람객의 소통의 장」, 『매거진한경』, 2013,

 

근대에 이르러 출판산업은 1884년 광인출판사를 시작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다가가, 일제강점기를 지나, 1945년 상반기에는 겨우 46개의 출판사만 생존했었습니다. 그러다 해방 이후 1949년까지 4년 새 무려 874개 출판사가 등장하여 창작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2)

 

1880년대 천주교 신자 ‘최지혁’의 글자가 신문사 등에 인쇄, 1930년대 주요 신문사들이 활자를 개발하기 시작, 『조선일보』에서는 명조체계열의 ‘박경서’ 글자, 『동아일보』에서는 순명조체계열의 ‘이원모’ 글자를 사용, 1950년대에는 제1세대 한글타이포그래퍼 ‘최정호’가 사진식자용 명조체 원도개발, ‘최정순’이 교과서 활자와 신문 활자의 근간을 이룬 원도를 설계, 1960년대에는 납작한 글꼴을 설계하여 신문서체의 새 장을 열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컴퓨터가 유입되면서 ‘쓰고, 조각하는 맛’의 타이포그래피에서 ‘타자치는 맛’의 타이포그래피 세대로 본격적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하여 ‘샘물체’를 개발한 ‘이상철’ 외에 전자출판도입에 중추적 역할을 한 ‘한국전자출판교육원’ 원장 ‘이기성’ 등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1970년대를 넘어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현재까지 중견 한글타이포그래퍼로 활동 중인 ‘안상수체’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 등을 개발한 ‘안상수’, ’참명조체‘, ’회상체‘, ’햇살체‘ 등을 개발한 ‘윤영기’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최근 ‘안상수’는 ‘두나무’ NFT 플랫폼 ‘업비트 NFT를 통해 ’문자도 ㅎ‘을 판매, 판매대금 전액을 ’한글 연구 발전‘을 위해 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2) 조현신, 「독서가 유흥이던 시절엔 표지마저 휘황찬란」, 경향신문, 2015.

2000년대에 이르러 출판물 등 사진·영상·책·포스터 시각매체 전면에 한글사용이 두드러지는데, 이와 맞물려 디지털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출판계 등 문화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사용이 증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부, 지자체, 협회 등에서도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정책·사업·행사 등을 활발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더 다양하고 많은 한글 타이포그래퍼들이 양산되었습니다.

‘이용제’ 디자이너는 2004년 세로쓰기 전용 폰트인 ’꽃길‘로 알려져,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 크라우드펀딩으로 ‘바람’체 등을 디자인했습니다3) ‘최지웅’ 디자이너는 영화 <비몽>, <증인>, <부산>>, <최악> <하루>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하여 영화포스터에 한글 타이포그래피 사용, ‘김동관’ 디자이너는 ‘HG꼬딕씨’를 개발,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포스터에 사용, 영상광고나 유튜브채널에서 ‘HG꼬딕씨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4)

한편, 기업들은 마케팅 전략으로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개발하여 무료배포하고 있습니다. 저작권 침해 위험도 벗고, 전용 서체로서 톡톡한 효과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인대요. 대표적으로 ’네이버‘의 ’나눔글꼴‘, ’푸라닭‘의 젠틀고딕체’, ‘배달의민족’의 ‘도현체’, ‘티몬’의 ‘몬소리체’. ‘야놀자’의 ‘야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체’ 등이 있습니다. 

 

3) 톱클래스(http://topclass.chosun.com) 4) 국립한글박물관, 『함박웃음』 5) 임유빈, 「전용 서체 무료 배포,IT기업들의 감성 마케팅」, 앱스토리,

 

경기도, 광양시, 대구 수성구 등에서 도시브랜딩전략으로 전용 한글서체를 개발·배포, 서울시 종로구는 서울시 서울남산체 개발, 2008년부터 도시의 공공디자인 차원에서 ’한글간판‘을 제작, 올해부터 정례화하기로 한 ’서울시‘의 ’외국어를 남용한 정책사업명에 대한 실태조사‘ 등의 사업·정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공공디자인 차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조망하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다양한 문화예술기관에서 개최하는 타이포그래피 ’전시‘가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 한글 타이포그래피, ’높은 문화의 힘‘ 발휘하길

이처럼 다양한 문화산업군에서 활약 중인 타이포그래퍼들의 창작자 본연의 노력과 국가ㆍ기업ㆍ민간 차원에서의 다양한 한글사용정책ㆍ사업으로 인한 타이포그래피 수요증가, 점차 창작자의 참신하고 개성있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취향은 타이포그래피 산업이 질적 · 양적 성장하는 매커니즘이 되었습니다.

 

일각에선 디지털기술과 접목시킨 타이포그래피 종류는 나날이 발전. 주목받는 반면, 아날로그 형식의 손편지는 찬밥신세가 되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손글씨가 그 자체로 쓰이거나, 디자인 생산에 영감을 주는 원천자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삐뚤빼뚤 눌러쓴’ 글씨체와 함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수집‧DB화 하고 있는 네이버, 교보문고의 손글씨(필사)대회를 통한 글씨체 발굴ㆍ수집 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의미도 있지만, 제2의 창작활동에 영감을 주는 원천자료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백범김구선생은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길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백범김구선생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전세계인에게 ‘K-문화코드’로 작용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근원지가 되고,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명성도 높아져, “높은 문화의 힘”을 발휘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원합니다.